GGGS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 2023. KAIST GGGS. ALL RIGHT RESERVED.

학술 정보

[손정락의 기후행동] 국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몇 가지 제언 250430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5-07-01 17:06:47

조회수64

과거 산업화 시대 우리나라 국가 에너지 정책은 산업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최우선이었다. 기후변화 대응이 본격적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과 연계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었다. 당시 녹색산업을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 했던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지만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환경단체들과의 갈등으로 정책 추진의 동력은 급속히 소멸되었다. 같은 시기 중국 부주석이었던 시진핑은 청정에너지를 국가 주력산업으로 성장시키는 꿈을 키웠고, 그 결과 중국은 오늘날 세계 청정에너지 산업 선도국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정책은 다시 국가 주력 정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임기 내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갈등이 사회적 갈등으로 증폭되는 바람에 정책다운 정책을 구현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여기서도 국가 리더십 부재의 시대였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세계 에너지 지정학의 변화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관세 전쟁은 국가 간의 협력을 악화시켜 기후변화 대응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전기자동차, 태양광 패널 등 청정에너지 글로벌 공급망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수선 상황에서 새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국가 에너지 정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이러한 국내외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후변화 상황은 누구를 탓할 정도로 한가하게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이제는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해야 한다.

 

첫째, 기후변화 대응의 우선순위를 감축에서 적응으로 전환해야 한다.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 저탄소 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면 기후 위기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낭만적인 생각이 되어 버렸다. 온실가스 감축도 일단 살아남아야 가능하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살기 좋은 우리나라는 이미 폭염과 폭설, 가뭄과 장마가 일상화되었다. 현실로 다가온 기후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우리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후변화 적응은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둘째, 국가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정책은, 과거 산업화 시대처럼 공급자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수용성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수요자가 스스로 기존의 화석연료를 버리고 비화석연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소비자들이 주방에서 도시가스 대신 전기에너지의 인덕션을 선택하는 흐름은 정부의 공급 정책 때문이 아니라, 보다 깨끗하고 편리한 에너지에 대한 소비자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공급자는 소비자가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단 제공에 집중해야 한다. 수요자는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시장을 만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힘을 활용한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

 

셋째, 파괴적 기술혁신에 대한 기대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만으로는 닥쳐오는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수소 기술 역시 아직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 난 감축 산업이나 열에너지 무탄소화에 필요한 실질적인 수단들은 아직 세상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2050 탄소중립에 필요한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량의 50% 이상은 지금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혁신적인 기술들이 나와야 가능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언제나 위기의 순간마다 혁신적인 기술들로 돌파구를 열어왔다.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엔진, 20세기 초반 식량 문제를 해결한 화학비료가 그러했다. 지금처럼 중차대한 기후 위기 앞에서 기술혁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국가는 인내심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를 여는 파괴적 혁신의 싹을 끊임없이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계획보다 실천이 우선되어야 한다. 수많은 전략과 로드맵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선언이 아닌 실천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새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의 중심 전략으로 삼고, 국민의 생존과 미래를 책임지는 정책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