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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정보

[손정락의 기후행동] 흔들림 없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길 250326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5-07-01 1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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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절반이 흑사병으로 사망하면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로 인해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는 기존의 목재에서 석탄으로의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인구증가와 도시화로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면서 석탄이 주요 에너지 자원으로 자리잡았다.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전환의 서막이었다.

 

20세기 초반 1차세계대전은 석유로의 전환에 불을 지폈다. 풍부한 석탄 자원과 철도망으로 무장한 파죽지세 독일군을 서부전선에서 멈춰 세운 것은 연료가 석유였던 영국제 탱크의 기동력이었다. 이어 항공모함과 전투기로 치러진 2차세계대전은 석유로의 전환 끝판왕이었다. 이후 인류의 삶은 화석연료 에너지를 통해 진화해왔으며 이는 더 유용하고 편리한 생활로의 진보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화석연료로의 전환이 효율성과 편리함을 위한 '자발적 전환'이었다면 비 화석연료로의 전환은 외부환경 변화로 인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비자발적 전환'이다. 다시 말해 화석연료 에너지 전환은 '하고 싶은 전환'이었지만, 비 화석연료로의 전환은 '해야 하는 전환'이다. 이는 변화에 대한 저항을 감수해야 하므로 당연히 더 어렵다. 더욱이 인류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여전히 80%에 이른다. 대다수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선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현재의 비 화석연료로의 에너지 전환 동력은 늘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시장''기술' 통한 에너지 전환 추진 필요

 

2020년에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지만 불과 2년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순간에 에너지 안보 이슈에 파묻혀 버렸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약이라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루었던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회의(COP)는 그 이후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로 여전히 날을 지새우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강조하며 석유와 가스 생산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가스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유권자의 불만을 기반으로 극우정당이 원내 제2당 위치로까지 약진하면서 유럽의 에너지 전환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비 화석연료로의 에너지 전환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핵심 수단은 '시장'이다. 문제는 '하고 싶은 전환'은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지만 '해야 하는 전환'은 누군가가 시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에너지 전환 동력이 취약해진 상황에는 더욱 그러하다. 또 다른 핵심 수단인 '기술'은 지속적이고도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을 위해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의 50% 이상은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기술들에 의존해야 한다. 혁신기술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견인차이기도 한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지금의 정치적 혼란이 정리된 후 국가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해야 할 한가지를 꼽으라면 국가 에너지 인프라 확충이다. 시장을 열고 혁신기술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튼실하고 유연한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이는 정부가 할 일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꿈을 지닌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에너지 인프라인 전력망의 경우를 보면 현실은 우울하다. 20235월 향후 15년 계획의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이 발표되었지만 계획의 85%가 지금까지 미착공 상태다. 송전선 건설을 위한 입지선정에서부터 완공까지 평균 13년이 소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들어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목이 마르다.

 

미래지향적 인프라 구축해야 낙후국가 면해

 

비 화석연료로의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 산업은 더 이상 과거 산업화 시대 국가기간산업의 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시장과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국가 성장동력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 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은 정부의 몫이다. 더구나 그 인프라의 모습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자유롭게 시장을 형성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해 혁신기술들이 춤을 출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최소한 이것마저도 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른 성장기회를 잃고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의 낙후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