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5-07-01 17: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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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의 백열전구 발명은 ‘전기의 시대’로 불리는 제2차 산업혁명의 서막을 열었다. 발명가이자 사업가였던 에디슨은 불과 3년 만에 뉴욕 맨해튼 펄스트리트 발전소를 세우고, 인근 가정과 사무실에 설치된 수백 개의 조명용 전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를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감격했지만, 진작 전기요금은 점등된 전구의 개수에 따라 부과되는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당시 전기 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 사업가는 따로 있었으니 사무엘 인설(1859~1938)이었다. 인설은 계량기를 이용한 사용량 기반의 요금 체계를 도입했다. 그리고, 생산된 전기는 실시간으로 소비되어야만 하는 전기 에너지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설비들의 낮은 가동률 문제를 시간대별 요금제로 해결했다. 또한 다수의 소규모 발전소들을 인수하고, 송·변전망까지 통합해서 대형 전력 유틸리티 회사를 세웠다.
인설은 경쟁보다는 독점이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믿었고, 강력한 지배구조 아래 회사채를 발행하고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인설의 제국은 1929년 미국 대공황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전기 수요가 급감하고 금융 시장이 마비되면서 회사는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주가는 폭락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
193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는 인설을 금융 남용과 독점 자본의 상징으로 강하게 비판했고 당선 후에는 ‘공공 유틸리티 지주회사법’을 제정해 인설이 구축한 거대 전력산업 구조를 해체했다. 인설은 사기와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고 결국 유럽으로 떠난 그는 1938년 어느 날 파리의 한 지하철역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쳤다.
한편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통해 전력산업의 공공성을 강화했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를 설립해서 정부가 직접 전기를 생산·공급하도록 했고, 공적 감독을 강화했다. 그의 뉴딜정책은 오늘날까지도 성공적인 국가 주도 산업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인설의 모델은 한계와 과오가 있었지만 그가 구축한 기반 위에 루스벨트의 공공성이 더해지면서 현대 전력산업의 근간이 완성된 셈이다.
오늘날 전기는 다시금 시대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는 전기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현재 전 세계 최종에너지에서 전기의 비중은 약 20% 남짓하지만,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최소한 50% 이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의 인공지능 열풍으로 인한 전기 수요의 증가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더구나 재생에너지 기반의 미래 전력시장은 더 이상 공급자가 전기를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소비자가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구조가 아니라, 소비자가 다양한 공급자 중에서 원하는 종류와 품질의 전기를 선택하는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다. 전기는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닌, ‘서비스재’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전기화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전력회사인 한국전력은 지금까지 인설식 산업구조와 루스벨트식 공공성을 함께 계승하며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 공급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해진 사업 구조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을 낳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조 개편 논의는 25년 전부터 시도되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작금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되어야 할까? 당연한 예기지만 공급자 중심 구조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분산형 전원과 다양한 수요처를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하게 연결하는 미래 지향적인 전력망 구축이 필수적임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전력은 이미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 미래에 대한 준비가 버겁기만 하다. 현재처럼 경직된 중앙집중적인 거대한 구조로는 탄소중립과 인공지능,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서비스 시장이라는 새로운 전기화 시대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인설의 사업모델, 루스벨트의 국가전략 필요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이번에도 역시나 정쟁의 먹잇감으로 소모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함께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 사업 모델로 등장할 또 다른 ‘인설’이 필요하며, 이를 국가 전략으로 이끌 ‘루스벨트’의 리더십 또한 절실하다.
탄소중립과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아, 우리 전력산업도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진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