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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락의 기후행동] 에너지 전환, 시장의 힘을 활용하라. 240327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5-07-01 1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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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계가 지난해 4월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발간한 리더십의 사명: 보수의 약속이라는 보고서 열공 분위기다. 이 보고서는 1980년 처음으로 작성되어 미국 보수층이 가장 성공적인 정부로 평가하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 지침서가 되었다. 그 후 미국 대선 시기에 맞춰 발간되어 온 이 보고서는 공화당 대통령들이 집권할 때 마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전 세계가 지금 이 보고서에 유독 주목을 하는 이유는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 보고서에 담긴 에너지 정책 관련 내용들도 만만치가 않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터 에너지 기술혁신을 주도해 온 ARPA-E는 폐기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청정에너지 보급 확산을 위해 설치했던 에너지부 산하 청정에너지실증국도 폐기된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청정에너지 보조금 영역은 대폭 축소된다. 지난 수년간 세계를 달구었던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미국 에너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닐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한가지 크게 눈에 띄는 부분이 에너지 기술 상용화와 시장확대 주체를 민간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을 정부가 실패 위험이 큰 영역에 투자해서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ARPA-E와 청정에너지실증국 폐기를 위한 논리이기는 하지만 어찌 좀 궁색하기는 하다. 어쨌던, 에너지 전환은 시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지금 그냥 시장이라는 벌판으로 내몰리면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 우려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은 이미 시장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국제 에너지 기구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해동안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총투자 2.8조달러 중에서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가 1.7조달러로 전체의 60%를 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 태양광과 풍력 설치는 각각 85%, 60% 증가했고, 판매된 자동차 열 대 중 한 대가 전기자동차였다.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최대 수혜자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대부분 조지아주를 포함한 공화당 소속의 주지사가 있는 지역 주민들이다. 새로운 공장들이 건설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마다할 리가 없다. 더욱이, 이 제도는 단순히 보조금 지급에 의존한 에너지 전환 정책이 아니라, 그간의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한 신자유주의 기반 미국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국가 산업정책이고, 통상정책이기도 하다. EU가 볼맨 소리를 하며 대응책을 발표하고, WTO가 못마땅해 하는 이유다. 그러면, 이런 정책을 과연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다고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폐기되더라도 에너지 전환 시장의 성장은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필자는 몇해 전 우리나라 2050 탄소중립 국가전략 수립에 참여하면서 내린 결론도 시장을 통한 탄소중립이었다. 정부 주도의 국가정책만으로는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판단때문이었다. 더구나, 선거가 지나면 정부 정책의 기조도 한 순간에 바뀌니 에너지 전환을 정부 주도만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을 통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소비자가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시장에 기반한 에너지 가격의 형성이다. 지금처럼 국가가 전기와 가스같은 에너지의 가격들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한 시장 활동이나 에너지 전환 기술 개발이 활성화 될 수는 없다.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 두기가 미덥지 못하면 적어도 가격 결정 의사구조 만큼이라도 지금보다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이 전력망과 같은 국가 인프라이다. 국가 전력망은 보다 시장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급자 중심의 송전망은 더욱 튼실하되, 배전망은 소비자의 진입을 허용하기 위해 더욱 유연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배전망이라는 틀 안에서 함께 뒤엉켜 춤을 추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장을 뒤흔들 혁신 기술들이 나올것이고, 새로운 사업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국가 주도의 각종 에너지 계획수립 작업들도 이젠 그 수명이 다했다. 그 역량으로 신뢰성있는 미래 전망 시나리오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 시장에 더 도움이 된다. 국가가 계획을 세우고 그 틀 안에서 움직이는 시장만으로는 시장 고유의 역동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젠 정부가 정책이라는 그립의 힘을 빼고, 시장의 역할을 확대시켜야 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시장이라는 힘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