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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락의 기후행동] 도덕적 전쟁, 정치적 전쟁 240110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5-07-01 16: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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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1월 제 39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미 카터는 에너지 문제 해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197310월 제4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산유국들의 석유금수 조치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오일쇼크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미국인들은 하루 아침에 40%나 오른 가격판을 보며 주유소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자기 살길이 바쁜 유럽의 공업국들과 일본이 앞다투어 친중동 정책을 천명하는 중에도 미국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국내 정치에 함몰되어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충분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카터는 권위가 실추된 미국 정치에 도덕적 쇄신이라는 참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일쇼크로 인한 에너지 문제는 그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취임 후 90일 내에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을 공약한 그는 닉슨과 포드 대통령 시절 국방과 안보분야 요직을 거친 제임스 슐레진저에게 그 일을 전담시켰다. 전임 공화당 정부 인사였던 슐레진저에게 새로 출범한 민주당 카터 대통령이 국가 에너지 정책을 맡긴 것은 닉슨 대통령 시절 국가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다는 전력과 함께, 그가 에너지를 국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깊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슐레진저는 일찍이 전후 미국 경제부흥기에 산업들이 너무 석유에 의지해서 성장한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1977418일 카터대통령은 슐레진저 주도로 수립된 새로운 국가 에너지 정책을 TV 생방송을 통해 도덕적 전쟁에 관한 연설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도덕적 전쟁이란 용어는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1906년 스텐포드대학 강연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비폭력이지만 전쟁에 준하는 사즉생의 태도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오일쇼크로 인한 국제적 에너지 위기 상황이 점차 악화되어 국가적 재난 사태에 이를 것이라 경고했다. 그리고, 도적적 전쟁을 위한 정부 역할의 중요성,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심각성 인식과 희생을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정책 기본방향을 천명했다.

 

그 후 카터 행정부는 정부와 의회,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석유회사와 환경주의자 사이에서 치열한 도덕적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슐레진저와 카터가 추진했던 석유 수요 감축을 위한 대체에너지 확대 정책은 석유 사업자들에게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들의 저항은 집요했다. 오죽했으면 슐레진저는 그들의 로비에 길들어진 의회와의 끝없는 회의들이 다름아닌 지옥이었다고 회상 했을까? 기존의 익숙함으로 부터의 변화, 기득권에 대한 불가피한 불이익이 저항의 원인이었다. 훗날 슐레진저는 카터행정부가 겪은 악천고투는 도덕적 전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전쟁이었다고 개탄했다. 전임 정부에서 벌어진 세계 오일쇼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단행한 새로운 정책들은 재임 중 터진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오일쇼크를 견뎌내지 못했다. 석유에 대한 대안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대체에너지 정책의 상징이었던 백악관 지붕의 태양열 집열시설은 후임 정부가 들어서자 철거해 버렸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대체에너지와 양축을 이루었던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은 재임 중 터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로 동력을 잃어 버렸다. 사람들은 카터의 도덕적 전쟁에 관한 연설의 영문 이니셜을 모아 냐옹(MEOW)’, , 고양이 울음소리와 같다고 비꼬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혼란도 더 이상 도덕적 전쟁이 아닌 정치적 전쟁이 되어 버렸다. 비정상적인 전기요금으로 촉발된 한국전력의 경영상황은 심각하다. 2020년에 흑자였던 회사가 불과 2년만에 대규모 적자상황으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적 해석만 난무한다. 원자력 발전의 확대로 방향을 잡았으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가 뒤 따라야 함이 상식임에도 국회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천신만고끝에 법제화가 된들 이를 시행하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 능력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 의문이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과학적 근거를 주장하는 비과학적인 논란으로 고사의 상황으로 내 몰린지 오래다.

 

지금 더욱 심각한 것은 전문가 집단의 무기력함이고, 그 결과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긴장감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빨리 무기력함에서 벋어나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적 에너지 전환 기류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 분쟁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후배들은 정치적 전쟁운운하는 이 시대의 슐레진저들을 탓하게 될 것이다.